top of page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

 

 

 

   윤에게는 집이 없었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윤은 아니라며 내 코를 톡 건드렸다. 그다지 달갑지 않은 말을 들을 때 상대방의 코를 톡 치는 것, 그것은 윤의 습관이었다. 그럴 때마다 윤의 손에서는 담배 냄새가 났다. 살결 깊숙이 배어 있는 냄새였다. 언젠가 윤에게 너는 왜 맨날 남의 코를 톡톡 건드리냐 물어보자 윤은 대답했다. 머리를 치면 기분이 나쁠 테니까, 라고. 머리를 치는 거나 코를 치는 거나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의 생각은 이해되는 때보다 그렇지 않은 때가 더 많았으니까. 나는 그런 윤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으니까.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 그렇다면 그렇구나 하고 마는 때여서,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상대의 생각을 의심하고 함부로 재단하는 지금의 나와는 달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윤이 나에게 집이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때, 나는 조금 기뻤다. 윤에게 그런 마음을 숨기고자 애써 입을 앙다물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야기에 경청했다. 윤은 말할 때마다 눈을 크게 뜨고 상대방을 쳐다보곤 했는데, 그게 습관인 줄 몰랐던 당시에는 괜히 윤의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윤이 말해주기 전부터, 이미 윤이 노숙 생활을 한다는 소문은 학과 내에 파다했다. 학교 근처 공원 벤치에 누워 자던 윤을 봤다는 사람도 있었고, 지하철 역사에서 다른 노숙인과 말다툼하는 모습을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윤은 매일 같이 바퀴 하나가 빠져있는 캐리어를 엉성하게 끌고 다녔다. 캐리어를 당당하게 끌고 다니는 걸로 보아, 어쩌면 윤은 노숙 생활을 숨기는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학과 사람들은 큰 비밀을 알아내는 것처럼, 윤 몰래 소문의 사실 여부를 파악해 나가려 했다. 그러기 위해 찾는 대상이 바로 나였다. 그들은 나라면 당연히 윤에 대해서 다 알 거라 생각했다. 그럴 만한 것이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한 학기 동안 윤과 나는 쭉 붙어 다녔다. 우연히 교양 수업이 겹쳐 함께 다니던 것이 익숙해진 것뿐이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자꾸만 나에게 윤의 집이 있긴 한 건지 물었고, 윤의 캐리어에는 무엇이 있냐 물었다. 내가 윤과 있지 않으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가와 윤에 대한 것을 물어봤다. 그래서인지 나는 윤과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재촉할수록, 나만큼은 윤에 대해 전부 알아야 할 것 같아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그러니 윤의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윤이 안타까우면서도 약간의 기쁨이 동반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윤은 할머니와 살았다. 윤은 조그만 방에서 지냈는데, 이부자리 펼 곳을 제외하고는 전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가 읽던 책들, 곳곳에 낙서되어 있는 서랍장,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접이식 의자 같은 것들. 어떤 날은 바닥에 구멍 뚫린 냄비가 방에 생겨나기도 했다. 방에 쌓여 있는 물건 중 윤의 것은 거의 없었다. 할머니가 버리지 못하고 남겨 둔 것들이거나 새로 주워 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서랍장이나 고장 난 스탠딩 전등을 바깥에 버려둬도, 다음날이면 원래 있던 자리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심지어는 윤이 신다가 구멍 난 양말이나 팬티도 쓰레기통에 버려 놓으면, 어느샌가 꿰매진 채로 옷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 윤은 아침에 일어나 찬물로 씻고 학교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와 좁은 이부자리에서 잠을 자는 게, 집에서 하는 일의 전부였다. 할머니가 온수 밸브를 잠가 놓고 살아서 물을 데워 씻어야 하는데, 매일 그러기가 번거로워 그냥 찬물로 씻고 살았다고. 가끔 발 디딜 틈이 없는 방을 비집고 들어가 누울 때면, 할머니에게 자신은 이곳에 쌓여 있는 물건들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고 윤은 말했다. 그 시절을 살아온 대부분이 그렇듯이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며 살아와서 버리는 것이 습관 되지 않은 분이라고,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버릴 생각조차 못하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가 윤을 버렸다. 할머니는 원룸으로 이사하면서, 집에 쌓아둔 짐을 다 챙겨갈 수가 없었다. 고모가 와서 이삿짐 싸는 걸 도왔는데, 그동안 무얼 버리는지 정하느라 두세 번 정도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윤도 몇 없는 자신의 짐을 줄여 조그만 캐리어 안에 전부 욱여넣었다. 그 캐리어도 윤이 몇 번이나 버리려고 시도했으나, 할머니가 몇 번이고 다시 주워 온 것이었다. 이삿짐을 전부 옮기고 나니 생각보다 집이 비좁았다. 고모는 짐을 더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할머니는 윤에게 같이 못 살 것 같다고 말했다. 꼭 윤이 다른 곳에 살 집이라도 있는 것처럼. 윤은 너무 황당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무작정 바깥으로 나왔다. 처음 와 본 동네를 한참 살펴 다니다가, 길 중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벤치를 발견해 잠시 앉았다가, 그대로 누웠다가, 가만히 어둠을 응시하다가, 내일이면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야 해서 다시 집으로 갔다. 버려졌음에도 다시 제 발로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 집 문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한참을 울었다. 그동안 윤의 짐이 가득 든 캐리어는 윤과 함께 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바퀴 한쪽이 빠져 위태롭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듣기 한 달 전 즈음에, 윤의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윤이 삼 일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아서 나도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윤에게 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에, 윤에 대한 소문이 조금 잠잠해지는 듯하기도 했다. 윤은 여전히 할머니의 죽음을 생각하면 찝찝하게 슬프다고 했다. 찝찝하게도 슬픈 감정이 드는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찝찝하게 슬프다고.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윤은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했다. 윤은 스무 살이 되자마자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혼자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집을 구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뷔페 조리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윤은 꼭 집이 있어야 할까? 라는 생각을 끝으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할머니 집을 떠났다. 처음에 할머니는 놀라지 않았다. 윤이 캐리어를 끌고 나가는 그 순간에도, 아무런 인사 없이 큰 소리로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한 달 뒤에는 달랐을까.

   그때 윤은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이, 혼자 저 말을 곱씹었다. 바깥에서 한 달을 살았을 즈음, 윤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쓸모없는지 파악했다. 그러고는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수건은 하나로 부족했고, 생각보다 야외에서 자는 날이 적어 담요는 필요 없었다. 대신 두꺼운 점퍼 하나를 챙겨 입었고, 사치품이라 생각했던 만이천원짜리 향수를 챙겼고, 평소에 자주 신어 챙겼던 크록스는 신발장에 넣어두었다. 한 달 만에 집으로 온 윤을 보고 이제야 왔냐며 잘 왔다고 인사하던 할머니는, 대꾸 하나 없이 물건을 꺼내고 집어넣고 반복하던 윤을 가만히 응시했다.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금방 풀고 잘 지내는 거지.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처음으로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때도 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싸구려 향수를 허공에 뿌려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런 윤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제자리로 돌아가 누웠다. 윤이 짐을 다 싸서 나갈 때까지, 할머니는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제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게 윤이 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그때 왜 그랬을까. 윤이 물었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윤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니 정적이 흘렀다. 그때의 나는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윤에게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빠한테 맞다가 응급실에 실려 갔던 일에 대해서. 고등학교 때 문예창작과 입시 학원에 잠시 다녔는데, 저 이야기를 썼더니 선생님이 너무 전형적인 이야기라 했던 것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게 해외 직구로 약을 구매해 며칠을 먹으며 하혈하던 날들에 대해서. 그렇게 끔찍한 복통을 느끼며, 생명이라 칭해도 될지 모를 것을 죽이던 때에 대해서. 내 이야기를 들으며 윤은 하나하나 대답했다. 아니, 되물었다. 너도 맞았어? 아빠가 가족을 때리는 게 전형적인 일이라니, 문득 참담하게 느껴지지 않아? 약은 어디서 어떻게 구했어? 법적으로 생명이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같은 것들을. 다 듣고 있다면서 나를 등지고 틈틈이 담배도 피웠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어찌 됐든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내 이야기가 끝나고, 정적은 또다시 흘렀다. 이전의 정적과는 달랐다. 이왕이면 숨기고 싶던 것들로 정적을 메우고 나서야, 윤과 비로소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가까워지니, 그 이후의 정적은 보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윤이 내 집에 머물게 된 이유는 장마 때문이었다. 내가 우리 집에서 이주 정도만이라도 지내라 했을 때, 윤은 괜찮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윤을 계속 바깥에서 자도록 놔두기에는, 당시 윤의 모습이 너무나도 엉망이었다. 이전에 내가 윤에게 신기했던 모습은 놀랍도록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윤은 바깥에 머물면서도 매일 같이 씻었다. 평소에는 주로 드라이 샴푸를 이용했고, 날이 더워져 찝찝하면 공용 화장실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고 핸드 드라이어에 머리를 말렸다. 금요일이 되면 사우나에서 하룻밤 묵었고, 빨래방에 가서 일주일 치 빨래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병적으로 향수를 뿌렸다. 윤의 멀끔한 생활이 꼬이기 시작한 건 장마가 시작되고 나서였다. 평소라면 비가 와도 하루 이틀 정도만 사우나에 머물면 됐다. 대신 돈을 아끼기 위해 빨래를 며칠 더 미룬다거나, 하루 동안 에너지바 하나로 버티면 됐다. 그러나 며칠 내내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 그것도 땅을 뚫을 듯 세차게 쏟아지는 장맛비에 대해서 윤은 대비해 둔 게 없었다. 장마가 시작되고 나서 삼일 정도는 제자리에서 버텼다. 하루는 식당에 꽂혀 있던 튼튼한 장우산을 훔쳐 쓰고, 평소에 윤이 애용하던 벤치에서 잤다. 당연히 윤은 쫄딱 젖었다. 심지어는 굵은 빗줄기와 싸우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으며, 몸이 마를 새가 없어 아르바이트도 가지 못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그 뒤로는 지하철역에서 자거나 24시간 카페에서 -음료를 시켰던 척하기 위해- 텀블러 하나만 테이블에 올려놓고 자기도 했다. 지하철역이 잠길 정도로 비가 쏟아졌을 때는, 몸과 캐리어가 비바람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자신을 붙드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윤은 오랜만에 ‘집’이란 곳에 들어섰다.

 

   집은 이전보다 활력이 돌았다. 엄마와 나, 그리고 윤까지 셋이 밤마다 술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는 어떤 날에는 소주, 어떤 날에는 맥주, 그리고 또 어떤 날에는 막걸리나 와인을 먹기도 했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취하는 이가 달라졌지만, 주로 취해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취하고 나면 스스럼없이 윤에게 아빠의 이야기를 했다. 자랑하듯이 옆구리의 흉터를 꺼내 보이기도 했다. 옅은 흉터보다는 불룩 튀어나온 살에 더 시선이 갔다. 엄마는 윤에게도 스스럼없이 왜 노숙자가 되길 선택했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노숙자’라는 단어에 새삼 놀라 윤의 눈치를 봤지만, 윤은 태연하게 할머니와 있던 일을 이야기했다. 엄마는 아무리 그래도 집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윤은 지금이 좋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비는 숱하게 오고 겨울이 되면 눈도 내릴 텐데. 더운 것도 문제지만 추운 건 더 큰 문제일 텐데. 나는 윤의 마음을 이해 못했지만, 엄마는 그런 윤을 보며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뿐만 아니라 다음에도 바깥에서 지내기 힘들 때면 얼마든지 찾아오라 했다. 나와 윤이 그랬듯, 엄마와 윤도 서로의 아픔을 꺼내며 가까워졌다.

   윤의 아르바이트가 늦게 끝날 때면, 엄마와 나는 윤이 올 시간에 맞춰 식사 준비를 해 함께 저녁을 먹었다. 거실에 모여 다 같이 영화를 보다 잠들기도 했다. 이전에 엄마와 나에게는 이런 시간이 없었음에도, 윤이 오고 나서는 당연하게 그랬다. 언젠가 잠들기 전 나는 널브러지듯 누워 있는 윤을 껴안으며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고맙다고 했다. 그러자 윤도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자신은 외로움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늘 혼자 지내 와서 외로움에 무던해진 것뿐이었다고 했다. 외로움이라는 건 누군가와 함께일 때 깨닫게 되는 거 같다고. 그 말은 오래도록 나에게 남았다. 앞으로 외롭지 말자며 서로 꼭 껴안던 순간, 술기운이 올라 뜨겁던 살결의 촉감도 남았다. 그때 나는 이유 모를 책임감이 들었다. 윤이 외롭지 않도록 늘 함께해 줘야겠다고 진심 어리게 다짐하기도 했다. 우리는 술을 먹은 밤이면 늘 그렇게 진심이 쉽게 오갔다. 어떤 진심은 술기운에 새어 나갔고, 또 어떤 진심은 내 안에 쌓였다. 진심이 쉽게 오간다고 해서 관계가 더 견고해지는 건 아니겠지만, 그땐 그런 줄로만 알았다.

 

   우리는 윤에 의해 모였듯이, 윤에 의해 흩어졌다. 물론 모이고 흩어지는 것에 있어서 윤이 의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윤의 얼굴에 퍼진 ‘링웜’이라는 곰팡이성 피부염 때문이었다. 윤은 바깥에서 지내며 길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밤이 많았는데, 그중 한 새끼 고양이의 몸을 베고 잔 게 원인인 것 같았다. 윤의 목 주변과 팔목 곳곳에 붉은 반점 같은 게 나기 시작했을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붉은 반점 위로 하얀 각질이 일어났는데, 그게 낫고 있다는 방증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윤의 얼굴과 온몸에 퍼져나갔다. 나는 그런 윤의 모습을 보며 예전의 집을 떠올렸다. 아빠를 피해 할머니 집에서 한 달 넘게 지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벽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한번 생겨난 곰팡이는 자꾸만 더 퍼져 나갔다. 집도 잘 돌봐야 하는 거구나,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었다. 윤의 피부는 술과 아무런 관련도 없었음에도, 엄마는 자꾸만 퍼져 나가는 게 다 술 때문이라고 단정지었다. 좋지 않은 건 어디로나 영향을 미치는 법이라며. 저녁에 함께 모여 술 먹는 시간이 사라지니 점차 모여드는 시간도 사라졌고,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할 시간이 사라졌다.

   나와 엄마가 안방 화장실에서 씻은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원래 그곳에는 비누 하나도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엄마는 새 샤워 타올과 수건을 구매해 안방 화장실에 넣어 두었다. 샴푸와 린스, 바디워시 같은 것도 전부 새로 사 두었다. 윤이 아르바이트에 가 집에 없을 때, 엄마는 나에게만 이야기했다. 앞으로 안방에서 씻으라고. 왜? 피부병 옮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윤이 빼고 우리만 안방에서 씻어? 그러자 엄마는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눈을 흘겼다. 윤은 피부가 점점 더 심해지는데도 왜 병원에 안 가니? 징그러워서 얼굴도 못 보겠어. 그리고 네 이불에 진물이 얼마나 많이 묻었겠어, 조만간 이불도 따로 쓰든지 해. 언제까지 우리 집에서 지낸대? 이불을 새로 사 놔야 하나? 엄마는 윤 없이 단둘이 있는 시간만을 기다린 것처럼 말을 쏟아냈다. 나는 엄마가 너무한 건 아닐지 생각하면서도, 윤은 도대체 왜 병원에 가지 않는 건지 답답했다. 윤은 무더위를 피해 방학 내내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한 터였다. 방학이 끝나기까지는 삼주 조금 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윤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말했다.

   너 왜 병원을 안 가?

   그냥. 그냥 안 가. 죽는 것도 아닌데 뭐.

   나는 ‘그냥’이라는 말이 괜히 거슬렸다. ‘그냥’ 만큼 책임감 없는 말이 없었다.

   너는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나한테까지 옮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여태까지 안 옮았잖아.

   순간 내 말투가 공격적이었는지, 윤도 평소보다 사납게 말을 내뱉었다. 아르바이트가 힘들어서 나에게 화풀이를 하나 싶었는데, 그때 윤은 캐리어에서 새 샤워 타올을 꺼냈다. 내가 뭐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윤은 방을 나갔다. 나중에 엄마한테 들어보니, 윤이 쓸 걸 까먹고 샤워 타올을 버렸다고 했다. 샤워 타올을 사 놔야겠다고 다짐만 하다가 까먹었다고. 한동안은 안방에서 씻는 게 괜히 눈치 보여, 윤이 없는 시간만 골라 씻고는 했다. 그 한동안은 고작 일주일이었다. 안방에서 씻는 게 적응되고 나서부터는 윤을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아마, 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윤이 함께 바깥에서 자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건, 2학기를 개학하고 한 달이 더 지나서였다. 여전히 가을이라고 부르기엔 더운 날씨였지만, 푸른 잎 사이로 붉은 잎이 얼룩덜룩 자라나고 있을 즈음이었다. 윤은 한강에서 자볼까? 라고 물었고, 나는 한강이라는 말에 바로 그러자고 했다. 이전부터 윤과 한번은 바깥에서 자기로 약속했지만, 막상 자려니 두려워 미루기만 했었다. 그런데 한강에서 돗자리 깔고 여유롭게 누워 자는 것을 상상하면 마냥 좋았다. 그곳에 누워 한강의 밤을 즐기는 사람들이 우리만은 아닐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윤과 맥주 한 캔씩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거라 생각하니, 더욱 그날이 기다려졌다. 그즈음 나와 윤은 학교 밖에서 잘 만나지 못했다. 개강하면서 윤은 다시 바깥 생활을 시작했고, 매일 같이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를 버느라 바빴다. 비 오는 날이면 가끔 우리 집에서 잘 만한데도, 윤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은 이제 안보다 밖이 더 익숙한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윤이 날 데려간 곳은 한강이 아니라 우리 집 바로 밑에 있는 하천이었다. 한강 근처는 바람이 많이 불어, 선선하기보다는 추워서 자기 힘들 거라 했다. 한강과 가장 비슷한 곳으로 골랐다는 윤의 말에 웃음이 나다 말았다. 집 앞에 있는 하천이라니. 한강에 가지 못해 아쉬운 것보다, 집 앞에서 잔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하천을 한참 동안 걸었다. 하천도 생각보다 쌀쌀했는데 걷다 보니 오히려 더울 지경이었다. 윤을 따라서 나도 캐리어를 끌고 나온 터라, 바퀴 소리가 요란했다. 걷는 동안 많은 사람을 봤다.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빠르게 지나쳐 갔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물가 근처에는 오리들도 있었다. 얼마 전에만 해도 노랗던 새끼 오리들이 꽤 자라 있었다. 오리들이 하천 산책로에 똥을 너무 많이 눠 문제라던 엄마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엄마에게는 윤과 여행 간다고 했고, 엄마는 내 말을 순순히 믿었다. 이것도 일종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생각했다. 비록 윤은 아니겠지만, 나에겐 일시적이고 특별한 경험이니까. 엄마의 말이 떠오르기 무섭게, 늦은 밤인데도 누군가 굳은 똥을 삽으로 긁어내고 있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계속 걸었다. 엄마 생각이 나니, 왠지 모르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 우리가 멈춘 건 윤의 캐리어 때문이었다. 문제가 있던 건지, 아니면 단순히 오래되어서인지, 캐리어 바퀴가 하나 더 빠져버렸다. 앞에는 왼쪽에 바퀴가 달려 있었고, 뒤에는 오른쪽에 달려 있었다. 더 이상 끌 수 없는 모양새였다. 나는 그만 멈추자는 윤 대신에 윤의 캐리어를 들고 십 분을 더 갔다.

 

   윤은 돗자리를 펴자마자 냅다 누웠다. 나는 옆에 조심히 앉아 숨을 골랐다. 주변을 살피는 동안 축축하던 땀이 차갑게 식어갔다. 나는 돗자리에 멀뚱히 앉아 있기가 민망해, 몸을 일으켜 헤엄치고 있는 잉어와 금붕어를 구경했다. 물고기들은 하나같이 힘없이 흘러갔다. 헤엄치는 게 아니라 물살에 떠밀려 가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새 내 옆으로 온 윤은 노숙하기 좋은 날이라며 기지개를 켰다. 노숙하기 좋은 날. 그런 날은 대체 어떤 날인 걸까. 나는 그 말이 참 어색하면서도 긴장됐다. 윤의 자유로운 삶을 더 밀접히 알게 될 거란 생각에 기대되기도 했다.

   늦게 배달 온 치킨은 다 식어 있었다. 길을 한참 헤매다가 겨우 온 배달 기사는 돗자리를 펴놓고 있는 우리를 보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나와 윤은 캐리어를 테이블 삼아, 그 위에 치킨과 맥주 두 캔을 두고 먹었다. 나는 집에서 가져온 비닐장갑을 꺼냈는데, 윤은 뭐 그런 걸 챙겼냐며 맨손으로 치킨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이 근처에 화장실은 있나? 나의 말에 윤은 물속에 몰래 들어가서 싸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는 윤의 말이 장난이겠거니 싶으면서도, 혹여나 방법이 그거 하나뿐일까 봐 걱정됐다. 티가 났는지 윤은 크게 웃었다. 핸드폰으로 화장실만 검색해도 근처에 있는 공용화장실이 다 나온다며, 자신이 아무리 밖에서 자도 남에게 엉덩이 보여줄 만큼 수치스러운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치킨을 먹는 동안 사람들은 계속 지나다녔다. 대부분은 우리를 이상하게 봤다. 지나가던 개는 치킨이 있는 쪽으로 달려들려고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통행로에서 뭐 하는 거냐며 핀잔을 주고 가기도 했다. 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고, 나는 윤 옆에서 개의치 않은 척하려 치킨을 더 열심히 먹었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네 캔 더 사 먹었다. 윤은 거기에 소주를 타 먹기도 했다. 오랜만에 술을 마시니 취기가 올랐다. 윤은 술을 마시니 담배를 더 수시로 피웠다. 윤은 내가 담배 냄새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주변을 거닐면서 담배를 피웠다. 덕분에 내 말은 자꾸만 뚝뚝 끊겼다. 윤도 웬일로 취기가 빨리 올랐는지 얼굴이 빨간 듯했다. 얼굴이 빨개졌냐고 묻자, 습관처럼 내 코를 툭 치며 말했다. 원래 빨갛다고. 평소였으면 담배 냄새가 짙게 났어야 하는데, 스치는 손에서 진물 냄새가 났다. 생각해 보니, 윤의 피부는 언젠가부터 늘 빨갰다. 왼쪽 눈두덩이에도 피부염이 번져, 눈꺼풀이 항상 부어 있었다. 한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윤의 모습은 어딘가 엉성하고 안쓰러워 보였다. 치킨 주위로 자꾸만 날파리가 꼬였다. 나는 결국 먹기를 그만두었다. 그러자 윤이 먹다 남은 치킨을 하나하나 물속에 집어 던졌다. 우리가 먹고 버린 뼈다귀도 집어 던졌다. 뭐 하는 짓이야? 내가 묻자, 윤은 너도 해보라는 듯이 앙상하게 드러난 날개뼈를 건넸다. 오늘 하루 동안만이잖아, 라는 말과 함께. 나는 윤에게 이끌리듯 뼈를 물속에 집어 던졌다. 윤에게는 하루일지 매일일지 생각하면서. 이건 자유로운 건지 무책임한 건지 생각하면서. 취해서 그런 걸 분별할 정신이 없었다. 그때 윤이 강물을 나에게 뿌렸다. 방금 치킨과 뼈다귀 따위를 전부 던져 넣은 그 물을. 늘 오물이 떠다녀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그 물을. 나는 깜짝 놀라 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윤은 한 번 더 나에게 물을 뿌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열면 오물이 내 입에 들어올까 봐 꾹 다물고 있었다.

 

 

 

   근처 공용화장실을 찾아, 그곳에 남은 쓰레기를 버리고 얼굴을 씻었다. 우리는 화장실로 가기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는 길에 윤이 뿌렸던 물은 이미 다 내 피부로 흡수되었지만. 윤은 민망하다는 듯이 말했다. 수영장 물도 저 물 못지않게 더러울걸. 그러면서 손등을 긁고 있었다. 나는 윤에게 언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가 자려는 곳으로 다시 향했더니, 돗자리 위로 우리의 짐이 널브러져 있었다. 누군가 캐리어를 열어본 모양이었다. 나는 엄마를 속일 겸 여행 기분도 낼 겸 가져온 거라 짐이 얼마 없었지만, 윤은 우리 집에서 지낼 때 사놓은 샤워 타올, 속옷, 일기장 등 윤이 가진 모든 게 다 꺼내져 있었다. 향수도 막 뿌려보고 갔는지, 아직 그 잔향이 돗자리 주변에 남아 있었다. 윤은 옷을 하나하나 개어 캐리어에 넣었고, 나는 그런 윤을 도왔다.

   전에도 이런 적 있어?

   어떤 할머니가 내 옆에 누워 자고 있던 적은 있었어.

   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막상 그때의 윤은 죽은 할머니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줄 알아, 할머니를 보고 비명부터 질렀다고 했다. 할머니가 죽은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던 때라 더욱 놀랐다고. 그날은 유독 새벽까지 공원에 사람이 많았다. 윤은 비어있는 벤치를 찾지 못해서, 편의점에서 상자 두 개를 구해 이어 붙여 자고 있었다. 그런데 깨고 보니 상자 위에서 자고 있는 건 윤이 아니라 할머니였다. 윤은 그 옆 풀밭에서 자고 있었고, 어쩐지 일어나면서부터 피부가 가렵고 따가웠다. 윤은 할머니를 깨울지 고민하다가 조용히 일어나 사우나로 갔다. 머리 안에서 흙이 자꾸만 만져져 빨리 씻고 싶었다. 할머니에게는 오랫동안 씻지 않은 냄새가 났다. 옆에는 비닐에 담긴 짐이 한가득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엔 쓰레기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 할머니도 집이 없던 걸까? 윤은 할머니를 보며 자신은 언제까지 바깥에서 지낼지 생각해 보았다고 했다.

   언제까지 밖에서 지낼 건데?

   집이 필요하다 느껴질 때까지.

   결혼은 할 거야? 그러려면 집이 있어야 할 텐데.

   내 말에 윤은 그저 웃기만 했다. 나는 먼 미래의 윤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여태 봐 온 사람 중 가장 특이해서 그런지, 내가 어떤 모습을 상상하든 그것과는 다를 것 같았다. 대체 왜 윤은 집이 필요하지 않을까. 윤과 바깥에서 밤을 함께하며, 나는 윤이 전보다 더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윤은 짐을 정리하다 말고 겉옷 주머니에서 커터칼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 뒤로 이것도 챙겨 다녀. 전에는 할머니였지만 앞으로 누가 내 옆에서 자고 있을지, 과연 잠만 잘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잖아. 윤의 말에 나는 황당해 웃음이 나왔다. 너 어차피 커터칼 그거 휘두르지도 못할 거잖아. 그러자 윤은 아무 말 없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멀리서라도 휘두르긴 할걸? 그러면서 윤도 해맑게 웃어 보였다. 나는 윤이 쓸데없이 해맑다고 생각했다. 윤이 의지할 건 커터칼 하나뿐인 것 같아, 답답하면서도 괜히 슬퍼졌다. 오랜만에 윤을 꼭 껴안고 누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윤 곁에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윤의 이상한 결심이 힘에 부치지 않게끔 곁을 주는 것뿐이라고. 밤하늘이 아득했다. 별 하나 반짝거리질 않았다. 가로등만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완연한 밤이었다.

 

 

 

   바깥에서 이리 쉽게 잠들 줄은 몰랐다. 뜨겁던 윤의 살결이 어느새 차가웠다. 깨어나도 여전히 하늘은 어두웠다. 나는 추워서 깼구나 싶었다. 바람에 낙엽이 서로 부대꼈다. 하천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조심스레 들려왔다. 당장 어디론가 들어가고 싶었다. 지금보다 따뜻한 곳이라면 어디든 다 괜찮았다. 아까 잠깐 들렀던 공용화장실이라도. 몸을 일으켜 윤을 깨우려는 찰나였다. 윤이 움직이지 말라고, 나만 들리게끔 웅얼거렸다. 계속 자는 척해. 나는 윤의 말을 따랐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 속에서 미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우리를 향해 킁킁거렸다. 나는 처음에 지나가는 고양이나 오리일 줄 알았다. 그때 누군가 내 발에 걸려 넘어졌는데, 나는 그제야 목소리를 듣고 남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 몸을 일으켜 내 발이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발로 찼다.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나려 했지만, 윤이 내 팔을 꼭 붙잡고 있었다. 종아리부터 발까지 얼얼한 통증이 퍼졌다. 나는 눈을 뜨고 싶어 한참을 망설였다. 나를 붙잡은 윤의 손에서 떨림이 느껴져, 쉽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누군가의 캐리어를 또 발로 찼고, 우리에게 알 수 없는 말을 퍼부었다. 실은 보이지 않아 우리에게 말하는지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는 눈 감고 누워 있는 우리를 함부로 대했다. 얼마나 더 그러고 있었을까, 윤이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눈을 뜨자 그의 성기가 보였다. 그는 윤에게 오줌을 싸고 있었다. 그의 오줌이 나에게도 튀었다. 내가 몸을 일으켰더니 그가 깜짝 놀라 굳었다. 그는 오줌을 싸던 도중에 바지를 입고, 급하게 발길을 돌렸다. 비틀거리며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가증스러웠다. 황당하고 허무했다. 윤은 나를 잡지 않은 반대편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그 안에는 커터칼이 있을 텐데, 윤은 그것을 휘두르기는커녕 꺼내지도 못했다.

 

   윤은 담담하게 씻으러 다녀오겠다고 했다. 온몸이 따갑다며 때려댔다. 말은 담담하게 했지만,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자꾸만 화가 치밀어 숨이 턱 막혔다. 우리를 함부로 대하던 그가 아니라 윤에게.

   어디서 씻게?

   아까 갔던 공용화장실에서.

   거기서 어떻게 씻게.

   윤은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또 말했다.

   우리 이제 어떡해.

   넌 집에 가면 되잖아.

   나는 윤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너도 집을 구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부터 네 얼굴이 흉측해서 못 봐주겠단 말을 하기까지 수많은 말이 오고 갔다. 윤은 내 말을 듣다 말고 도로 자리에 누웠다. 누워 눈을 꼭 감았다. 윤이 그러고 나서도, 나는 윤에게 한참을 말했다. 날이 서서히 밝아질 즈음 몸을 일으켰다. 윤은 잠들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자는 척하고 있을까. 분간되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 있는 윤에게 한참을 쏟아붓고 나니, 꼭 아까 그 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잠시 서서 윤을 바라보다가, 그 남자가 발로 찼던 캐리어를 줍고 다시 뒤돌아 우리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집으로 향했다.

 

 

 

   윤과는 그 뒤로도 잘 지냈던 것 같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늘 그랬듯이 붙어다녔고, 그날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윤은 다음 해에 휴학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윤과 영원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러운 멀어짐은 전혀 생각도 못 한 방식이었다. 윤과 나의 관계가 멀어졌음을 처음 자각하던 순간에는 혼란스러웠다. 나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듣고도 내 옆에 남아 있던 윤이었으니까. 어쩌면 윤이 누군가와 멀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할머니를 피해 집을 떠났듯이, 나를 피해 학교도 떠난 게 아니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윤의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곤 했다. 삼 년 만에 복학해서 만나게 된 남자와 동거했다는 소식도 들렸다가, 그 남자가 윤에게 헤어짐을 말하는 그 순간 바로 짐을 싸 바깥으로 나가버렸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 뒤로 윤은 다시는 전 애인에게도, 집에도 돌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윤답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윤의 피부는 어떤지, 이제는 괜찮아졌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그것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요즘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본가에서 엄마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세 시간에 한 번씩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재우며, 한숨도 자지 못한 채로. 이 와중에 윤을 떠올리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매년 그랬듯 장마철에 지하철역이 잠기고 도로가 잠겼다. 집 앞 하천은 잠기다 못해 물이 범람했다. 그곳에서 누군가 물에 떠밀려 죽었다고 했다. 그게 윤이지 않을까. 나는 문득 끔찍한 상상을 했다. 한번 윤이 떠오르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나는 아이를 매일 안아 토닥이며 윤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바깥에서 자던 날, 가만히 누워 있는 윤에게 굴러다니는 쓰레기만도 못한 삶 같다고 이야기했던 것도.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들 발길에 차이는 거라고, 모르는 남자의 오줌이나 맞으면서 사는 거라고, 네가 선택한 삶이 고작 그런 거라 했던 것도. 나는 그게 전부 윤을 위한 말인 줄 알았다. 결국 누군가를 깊게 알아간다는 건 그 사람과 멀어진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먼 미래에 와서도 윤의 지금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아마 내가 어떤 상상을 하든 그것과는 다르겠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윤의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는 윤과 함께했던 시간을 수없이 곱씹으며, 그날의 나를 자책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말을 아꼈더라면, 그때 윤을 혼자 두고 집으로 가버리지 않았더라면 하고. 그런데 또 한참을 자책하다 보면, 그게 나만의 잘못이었나 싶어 억울할 때가 있다. 윤은 할머니를 떠나고, 집도 떠나고, 자기 자신을 바깥에 내몰면서 자라났듯이, 그리고 나도 홀로 누워 있는 윤을 버리고 집으로 가버렸듯이, 책임감은 지키지 못해 생긴 무수한 희생을 통해 쌓여 가는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우리의 멀어짐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나는 보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때 서로를 지킬 힘이 없었던 것뿐이니까.

WWW.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