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내 머리를 내어줍니다, 당신의 머리를 건네주세요

 

 

 

   왜 당신은 쌓아 올린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겁니까

   팔 층 높이까지 올라간 석탑을 보고 누군가 말했다

   사람들은 석탑에 깔린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책과 돈과 실 같은 것들을

   그러다 어느 날 석탑이 사라졌는데

   사라진 것도 모른 채 사람들은 돌 아래를 짐작했다

 

   차라리 나도 눈을 갖고 싶어, 석탑은 그렇게 눈을 얻고

   길가의 모두가 수렁에 빠졌다

   길가라고 불렸던 그곳은 이제 지하 일 층이 됐다

   그렇게 깜깜함의 시절이 흐르다

   어린아이가 다가와 돌 하나를 얹으려다 말았다

   무너질 것 같아 보여, 그때

   석탑은 석탑으로 돌아가고 사람은 사람으로 돌아갔다

 

   왜 당신은 쌓아 올린 사람을 말할 때 나를 잊어버리는 겁니까,

   하지만 석탑은 점점 버거워졌다

   시간이 갈수록 석탑은 석탑의 이름을 가지고 많아졌고

   길가는 그만큼 자주 어두워졌다, 어린아이는 드물게 나타났다

   당신의 머리 위에 나를 올려보고 싶어, 참지 못한 석탑이 호소했고

   길가에 있는 사람들의 정수리에 돌 하나씩 얹어졌다

   그러자 서로가 서로에게 석탑을 올려준 것 마냥 행동하기 시작했다

   무거운 것에다 무거운 것을 올려놓는데,

   신기하게도 모두가 쓰러지지 않게 쌓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왜 우리는 석탑을 하나씩 쌓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겁니까

   누군가 그런 말을 했는데,

   가장 큰 돌에 깔려 흩어졌다

 

   누군가는 그 흩어짐을 자주 목격한다

   너의 머리를 잠시 걸쳐보기로 하자

 

 

   어제 먹은 대하가 내 머리를 집어삼켰다

   나는 도로 뱉으라는 말 대신에

   그래 너의 머리를 잠시 걸쳐보기로 하자, 하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대하의 속살이 됐다

   어쩌면 대하가 벌게지는 건 속살 때문인지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카메라 무게에 짓눌려 가는 대하를 바라봤다

 

   대하는 꼿꼿이 서는 법을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의자에 앉는 법을 배운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방황하는 법만을 깨우쳤을 뿐,

   대하의 머리에선 버터가 멈추지 않고 진득하게 흘러내렸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릴 들었다

   중계에 대한 불만들이 껍질을 뚫고 들어오고,

   다리가 메마르기 시작했다

 

   이내 누군가 대하의 등을 툭툭 쳤다

   나는 순간적으로 비닐장갑을 떠올렸고

   그곳엔 어제 대하의 껍질을 까주던 이가 있었다

   그는 아까 전부터 종종 그런 식으로 찾아와 나를 끄집어냈다

 

   그의 손가락이 대형 스크린으로 향하면

   나는 자세를 고쳐잡으며 사람처럼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똑바로 하겠습니다.

   그 말에는 버터 향이 짙게 묻어있는 듯

   입안 가득히 고소함을 남기고 흩어졌다

 

   그가 가고 나면 또다시 대하가 튀어나왔다

   좀처럼 소화되지 않는 대하의 얼굴로 카메라 줌을 당기면

   젓가락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보일 때가 있었다

   무대 위에도 무대 아래에도

   언제라도 내게 젓가락을 들이밀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서였다

 

   나는 그런 장면들을 지나 단 하나의 순간을 기다린다

   그때까지 나는 감기지 않는 눈알의 얼굴을 빌려 쓰고

   방황에 방황을 더하면서 고소함에 고소함을 곁들인다

 

   그러다 그 순간이 오면

   대하와 나는 완전히 하나가 된다

   프라이팬 속 소금에 절여져 가는 대하를 기억하며

   나는 어제의 맛을 잊지 못한다

WWW.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