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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도로 뱉으라는 말 대신에

   그래 너의 머리를 잠시 걸쳐보기로 하자, 하고 말했다

조주형, 「너의 머리를 잠시 걸쳐보기로 하자」 中

   | 창작 의도

   화자는 축제 무대 공연을 카메라로 중계하고 있는 사람이다. 뒤에서 관객들의 불만이 들려온다. 화자는 불안감 속에 방황하는 법만을 깨우친다. 무대 위에서든 아래에서든 자신을 욕하는 것 같다. 화자는 대하의 얼굴을 걸쳐보며 어제 대하를 까주던 이를 떠올린다. 몇 번이고 다시 상기하며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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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관객이었고 대하였던 우리

   우리 잠시 책임감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자. 화자는 그저 자신의 책임과 방황에 대해 말하지만, 독자는 은연중에 화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책임에 대해 느낀다. 그 책임은 관객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시 속 관객은 무대 위의 공연자가 아니라 그저 중계하고 있을 뿐인 화자에게 불만을 던진다. 보이는 대상에게 쏟아낼 대로 쏟아낸 불만을 보이지 않던 대상에게까지 쏟아낸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가 개봉하고 평판이 안 좋으면 영화감독뿐만 아니라 촬영감독이나 음향감독까지 욕먹는 시대다. 현대사회의 이런 점을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화자의 책임에만 생각해 보아야 할까. 「너의 머리를 잠시 걸쳐보기로 하자」는 독자에게 분명히 걸고넘어질 만한 점을 제시한다. 확실히 작품은 화자의 방황과 책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화자에게 방황을 쥐어 주고 책임을 느끼게 한 대상. 우리는 관객을 한번씩 짚고 넘어가게 된다. 작품을 읽으며 우리는 화자의 삶을 엿보고 잠시 화자가 되어본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삶에서 한번씩 어딘가의 관객이었다. 어쩌면 화자에게 불만을 털어놓는 관객이 우리 자신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대하의 시절이 있었다.

   대하처럼 굽은 등을 가지고 걸었던 시절. 방황하는 법을 깨우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편에 속한다. 두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을까. 펜 한 자루가 들려 있을까.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며 화자에게, 동시에 독자 자신에게 측은함을 느끼게 된다. 다독이는 사람은 고사하고 늘 젓가락을 들이대는 관객이 득실대는 세상. 우리가 윤동주의 <병원>을 읽고 감동과 슬픔을 느끼는 이유. 시와 현실과의 교집합을 보며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우리. 현실에도 어딘가 대하의 껍질을 까주던 이가 있지 않을까 하며 조그만 위로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언젠가 소금의 결정처럼 단단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D. 박정현, 홍준기   W. 홍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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